Ⅰ.
서론: 새만금 간척사업과 생태 거버넌스의 필요성
새만금 갯벌 간척종합개발사업(이하 새만금 사업)은 흔히 언론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간척사업으로 언급한다. 실제 새만금 사업은 역사상 최대의 간척사업이며 공사 시작 이후 30여 년이 흘렸지만, 여전히 공사는 진행 중이다. 2006년 4월 21일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난 이후 새만금 사업 자체가 마무리된 것으로 오해하지만 새만금의 내부개발사업과 이를 위해 기반조성사업, 환경개선사업, 수질개선사업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1)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된 이후 새만금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관심은 급격하게 소멸하였다. 하지만 새만금 사업 공사는 진행 중이고, 이 논문에서 주목하듯이 공사에 따른 갈등과 지역주민들의 사회적 고통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지 못하고 사회적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는 오늘날 한국의 언론과 학계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성찰도 이 논문을 시작한 문제의식의 한편에 있다.
새만금 사업은 초기부터 개발과 환경(생태) 사이의 갈등을 촉발하고, 공사 지역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지역민들을 희생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새만금 사업은 생태적 가치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운동을 소환하였다. 사업 진행에 따라 갈등의 양상은 조금씩 변경되었지만, 새만금 사업은 생태가 핵심 이슈로 부각된 최초의 사회운동이며 여전히 갈등의 중심은 개발과 생태이다.
새만금 사업은 오랜 기간 진행되면서 반대-중단-재집행-재반대-재심의 등의 복잡한 경로를 거쳤고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하였다. 이를 반영하듯 새만금 사업을 분석한 다양한 연구들이 있다. 이 연구들은 주로 대규모 국책사업 진행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에 주목하며 거버넌스와 갈등해소, 정책집행의 관점에서 사업 진행과정을 분석한다. 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주요 축이 ‘개발과 생태’였다는 점에 주목하여 환경단체들의 주장과 역할을 분석하거나, 사업을 계기로 환경이슈가 한국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졌고 성장하였는지를 분석하기도 한다.2) 지역공동체와 지역민들의 삶에 주목하여, 지역사회 내부 갈등에 주목한 연구와 이들이 경험한 사회적 고통과 삶의 변화를 분석한 연구들도 있다.3)
이처럼 다양한 주제의 연구들이 있지만, 대다수 연구는 생태라는 주제를 부각하고 이끌었던 종교(특히 불교)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는다. 새만금 사업 반대운동은 환경단체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종교계(특히 불교계)가 주요 행위자로 참여하고 생태 이슈를 전국화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당시 불교의 역할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기후위기의 해결방안으로 시도되고 있는 생태 거버넌스에서 불교(넓게는 종교)의 역할을 확인하고자 한다.
최근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는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실존적 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위기 극복을 위한 해결책으로 생태 거버넌스가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거버넌스는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 거버넌스(예,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기후단체들로부터 기후악당국가들과 기업들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시적으로도 위기의식 그 자체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참여도 끌어내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연구는 생태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종교의 역할과 자원에 주목한다. 그리고 생태 거버넌스의 실질적인 운영을 위한 주체로서 종교의 잠재력을 새만금 사업의 사례를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
Ⅱ.
이론적 배경 : 생태적 전환과 거버넌스
1.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전략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생태위기의 심각성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생태적 위기 극복을 위한 실천과정에서 관찰되는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주로 청년들이 참여하는 생태운동단체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은 급진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어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기후행동의 시급함을 알리고 있다.4) 이보다 온건한 단체 및 활동가들은 대중적인 시위와 집회를 통해 정부와 정치권을 대상으로 탄소배출 절감을 위한 정책 수립과 집행, 입법을 요구한다. 시민 대상 교육과 캠페인도 주요한 기후행동이다. 얼마 전부터는 미래세대를 중심으로 기성세대에 의해 자신들의 기본권(환경권, 생명권, 행복추구권 등)이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며 보다 적극적인 탄소절감정책을 요구하는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은 제한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행동과 실천들에는 일정한 희생과 불편함이 뒤따르거나, 현재의 생활양식을 수정하는 등의 선택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2022년 발표된 에델만(Edelman)의 특별보고서 「신뢰와 기후변화(Trust and Climate Change)」에 따르면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고 생활양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에 대해 우려한다는 응답률이 77%,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람들이 생활습관을 급격하게 바꿔야 한다는 응답률도 66%로 조사되었다. 한국인의 경우 변화가 필요하다는 비율은 80%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32%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거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일을 조금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38%는 추가로 돈이 들지 않거나 불편한 일을 일부 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70%의 응답자들은 희생이 요구되는 기후행동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85%의 응답자들이 현재의 생활양식과 자신이 바라는 생태 친화적인 생활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렇다는 점이다(Edelman 2022).
이러한 인식과 실천 사이의 간격은 환경주의와 생태주의의 차이로도 이해된다. 현재의 생태적 위기 극복 노력의 핵심은 기후온난화를 초래하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이다. 탄소배출은 생활양식 및 사회경제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탄소 절감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택하는 노력이 함축하고 있는 지향점은 환경주의와 생태주의가 다르다. 즉, 현재의 생활방식과 성장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환경주의는 현재의 생활양식과 사회체계에 기반하며, 이에 대한 도전을 자제한다. 오히려 ‘녹색 성장’이라는 명분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며, 과학기술에 대해 낙관적이며 미래 혁신에 의존한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은 현재의 사회체계에서 환경주의는 불평등과 착취를 정당화한다. 녹색 성장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받는다(Langridge, Buchs, and Howard, 2023: 50-55). 반면에 생태주의는 기후⋅생태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추구하지 않는, 즉 현재의 생활양식을 수정하는 대안적 접근방식을 추구한다. 그래서 생태주의에서 고려의 대상은 인간을 넘어선 자연, 불교의 용어로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을 포함하며, 생태주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Dobson, 2007: 3).
생태주의를 반영하는 대응전략은 ‘전환’으로 대표된다. 전환은 생태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와 이를 정당화하는 근대문명 패러다임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한다. 위기 극복은 현재의 문명을 새로운 대안문명으로 전환하고 생태 친화적 사회체제를 구성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사회와 사람들에게 저성장(혹은 탈성장)을 요구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소욕지족(少欲知足)의 가치와 욕망 절제를 강조한다.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환경주의를 반영하는 대응전략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완화와 적응, 지구공학이 대표적이다. 첫째, 완화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완화함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1.5도 이내 제한이라는 목표가 실패할 것이 확실한 것으로 예측되어, 완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적극적이지 않다. 둘째, 적응은 1.5도 상승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2도 혹은 그 이상의 기온 상승에 따른 사회변화와 생태변화를 예측하고 이로 인한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기후 관련 대책은 적응에 집중되고 있다. 셋째, 지구공학은 과학기술을 통한 기후변화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대표한다.5)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우주 그늘막, 해양 염기화 등이 그 사례이다.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기술적 통제를 더욱 증대하여 현재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현재 정부와 국제기구 등이 주관하는 생태 거버넌스는 환경주의에 토대하여 완환, 적응, 지구공학의 대응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2.
생태적 전환을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
오늘날 인류는 위기라는 조건과 그 극복을 위한 네 가지 대응전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또 다른 실존적 조건에 처해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현대사회에서는 거버넌스가 활용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시민사회, 기업, 일반시민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한다(Agranoff & McGuire, 2003: 117; 이명석, 2017: 113).
1970년대 서구의 여러 정부(government)는 새로운 사회적 이슈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사회문제 해결능력 부재라는 과제를 노출하였다. 이에 다양한 대안들이 논의되었고 거버넌스도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개념으로 등장하였다(이명호, 2022a: 80). 이처럼 거버넌스는 1970년대 이후 새롭게 부각한 여성, 환경(생태), 인권, 평화 등의 사회적 이슈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환경문제에 관련되어서도 이 시기에 ‘환경 거버넌스’가 논의되었다(오수길, 2017: 246). 이 영향으로 거버넌스에 대한 이해는 개별 학문분야와 관심영역에 따라 다양하다(문순홍, 2006: 2017; 이명석, 2002).
이 연구는 거버넌스의 다양한 이해 중에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조정(social coordination)”에 주목한다. 사회적 조정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나 조직들이 어떤 목적이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하도록 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사회적 조정양식은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주체보다 어떤 방법을 통해 해결할 것인가에 중점을 둔다(Chisholm, 1992; Beetham, 1996; 이명석, 2002, 2017).
거버넌스를 통한 문제 해결 방식과 의사결정방식은 크게 세 유형, 시장-시장 거버넌스, 관료제(정부)-계층제 거버넌스, 민주주의-네트워크 거버넌스로 구분된다.6) 개인 행위의 조정을 시장 거버넌스는 가격을 통해, 계층제 거버넌스는 공식적 권위와 강제력, 네트워크 거버넌스는 행위자 간 자치적 통제와 상호 간 규범화된 강제를 통해 조정한다. 사회적 이슈나 사회문제를 시장 거버넌스는 사법적 판단을 통해 계층제 거버넌스는 규정된 표준절차에 따라, 민주주의 거버넌스는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협력을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세 유형의 거버넌스(계층제, 시장, 네트워크) 모두 사회적 조정양식으로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세 가지 사회적 조정양식은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단일한 조정양식에 의존한 거버넌스는 불완전하며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세 가지 조정양식이 적절하게 혼합된 ‘협력적 거버넌스’가 대안적 조정양식으로 주목받는다(이명호, 2022a: 81).
협력적 거버넌스를 통해 현대사회가 직면한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된다. 세 가지 조정양식의 혼합 비율 또는 형태는 사회문제의 성격과 거버넌스 참여조직, 사회구성원의 특성 등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이명석, 2017: 193). 관건은 협력적 거버넌스의 조정자 역할을 누가 맡느냐이다. 사회영역이 각각의 전문영역으로 분화된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완화하고 조정하는 데 있어 조정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다른 전문영역에 대한 의견 제시나 협력 요구가 갈등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에, 조정자는 이를 적절히 중재하여 협력적 의사결정을 도출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협력적 거버넌스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이다(Xu, 2021).
협력적 거버넌스에서는 참여자들의 자발적 협력을 끌어내고 이해관계와 관련 활동을 조율할 수 있는 조정자의 역할이 요구되며 중요하다. 협력적 거버넌스의 조정자는 사회문제 해결에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조직이 가진 전문지식과 정보, 역량을 끌어내고 활용할 수 있는 리더십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문성만큼이나, 혹은 현재 상황에서는 다른 참여자들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과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교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조정자 역할에 적합하다. 이는 인류가 직면한 현재의 위기를 다루는 거버넌스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된다. 기후변화와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수준의 기후행동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협력관계와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 생태적 전환은 문명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참여자들의 지지가 필수적이다(이명호, 2022a: 82-84; 2022b: 715-716). 또한, 사회적 분화로 영역간 소통이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조정자 역할에 가장 가깝다. 종교는 다양한 영역과 비교적 자유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다양한 수준(국가, 지역사회, 개인 등)의 주체들과도 교류가 가능하다. 여러 종교의 가르침은 생태친화적이라는 긍정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Ⅲ.
새만금 사업 사례연구
1.
새만금 사업의 간략한 경과
새만금 사업은 전라북도 군산-부안(변산반도와 고군산도, 군산)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33.9㎞)를 축조하여 간척토지(291㎢)와 호소(118㎢)를 조성하고, 방조제 외부 고군산군도 3.3㎢와 신항만 4.9㎢ 등을 개발하는 국책사업이다(새만금개발청 홈페이지, www.saeman geum.go.kr).
새만금 사업은 1971년에 전북 옥구군 옥서면을 중심으로 금강, 만경강, 동진강 하구갯벌을 매립하는 ‘옥서 지구 농업개발계획’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972년 경제성 평가와 1984년 기본조사를 거쳐 1986년 농업 목적의 간척사업으로 전환되었다. 1987년 5월 ‘서해안 간척사업’으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현재의 새만금 간척사업의 내용으로 그 범주가 확정되었다(풀꼿평화연구소, 2004: 16-19).
사업의 내용은 확정되었지만, 사업이 곧바로 시행되지는 않았다. 기획재정부 등이 새만금 사업을 경제성이 없는 ‘사업 추진 불가’ 사업으로 판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7년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전라북도 지역공약 「새로운 서해안 시대를 대비한 개발전략」을 발표할 때 새만금 사업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노태우 후보에 대한 전북지역의 부정적 여론을 전환하기 위한 목적으로 새만금 사업은 12월 10일 전북 전주 유세에서 대선공약으로 전격 발표되었다. 1991년 11월 28일 새만금 사업 기공식이 기점으로 사업이 시작된 이후 새만금 사업은 각종 선거에서 승리를 위한 공약으로 반복해서 재활용되었다. 1992년 4월 총선과 1995년 지방선거, 이후 세 번의 대선에서도 주요 후보자들은 새만금 사업을 공약에 포함시켰다.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를 새로 포함한 사례도 있지만 사업의 큰 틀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사회운동이 활발해지고 1996년 시화호 수질오염 사건을 계기로 환경단체가 새만금 사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종교계와 환경단체, 지역주민들은 사업 중단을 요구하였다. 1999년 5월 1일부터 2000년 6월 30일까지 민관공동조사를 실시하였고, 정부는 순차개발 방식으로 최종확정하고 공사를 재개하였다. 종교계와 환경단체, 시민들은 이에 반대하여 2001년 8월 22일에 소송을 제기하였고, 2006년 3월 16일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공사가 재개되었다. 2006년 4월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고, 33.9km에 달하는 방조제를 2010년 4월에 준공하였다. 현재는 매립과 용지조성 등을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다.
2.
새만금 사업의 시기별 사회적 조정양식
새만금 사업은 사업 규모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이 크다. 그래서 관련 연구도 지속되고 있으며, 분석을 위해 약 30년에 이르는 사업 진행 과정을 주요 쟁점이나 이슈를 기준으로 구분한다. 이 연구도 생태이슈와 사업진행의 관점에서 1기 사업 결정기, 2기 가치(패러다임) 충돌기, 3기 사업계획 변경기, 4기 내부개발 추진기로 구분하였다.7)
1기 사업의 결정기는 1987년 새만금 사업이 결정된 시기부터 1996년 생태이슈가 부각되기 이전까지의 시기이다. 2기 가치 충돌기는 1996년 전후부터 생태이슈가 법원의 소송으로 이어지는 2003년 전후 시기이다. 2기에는 성장과 개발이라는 근대적 가치와 생명평화의 가치가 충돌하였다. 새만금 사업은 종교계와 환경단체, 지역주민의 저항에 직면하였고 운동의 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소송에 의해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였다. 2기 이후에는 생명평화의 가치가 새만금 사업에서 배제되었다. 3기 사업계획 변경기는 새만금 매립의 목적이 변경된 시기이다. 내부의 토지이용계획이 변경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2003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새만금 사업목적과 계획이 변경되고 이러한 내용이 2011년 새만금종합개발계획에 반영되어 확정되고 2012년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반영되어 법제화된 시기이다. 4기 내부개발 추진기는 2012년 제정된 특별법에 근거하여, 새만금 내부에 인프라 건설과 투자유치 등 내부개발 사업이 본격 추진되는 시기이다. 각 시기별 주요 행위자는 <표 1>과 같다. 2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부-국가 층위의 행위자가 거버넌스를 주도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표 1>
시기별 주요 행위자
| 구분 | 정부 | 시민사회 | 시장 | |
| 1기 | 국가 층의 |
농림수산부, 경제기획원,환경처, 청와대, 정당 | 건설사, 농어촌진흥공사 |
|
| 지역 층위 |
전라북도 | 전북도민, 새만금 인근지역 어민 |
지역기업 | |
| 2기 | 국가 층위 |
농림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국무조정실, 민관공동조사단,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정당. 법원 |
시민단체(환경단체), 종교계, |
민간기업, 농업기반공사(한국농촌공사) |
| 지역 층위 |
전라북도, 지방의회 | 전북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 새만금간척사업백지화를위한시민위원회, 새만금종합개발추진범도민협의회 등 주민단체 |
지역기업 | |
| 3기 | 국가 층위 |
청와대, 여당, 국무총리실, 농림부, 국토부, 환경부, 문체부, 교과부, 지식경제부, 새만금위원회 |
시민단체 | 대기업 |
| 지역 층위 |
전라북도, 지방의회 | 주민, 어민, 언론 | 지역기업 | |
| 4기 | 국가 층위 |
청와대, 총리실 새만금사업추진지원단, 농림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기확재정부 등 각 부처, 새만금위원회, 새만금개발청 |
환경단체 | 민간 투자기업 |
| 지역 층위 |
전라북도, 지방의회 | 주민, 어민, 시민단체(전북환경운동연합) | 지역기업 | |
| 자료: 조홍남(2020)에 제시된 표들을 재구성함. | ||||
시기별 거버넌스의 운영 형태를 협력적 거버넌스의 틀에 따라 설명하면 초기에는 정부가 주요 행위자로 거버넌스를 주도하였고 이를 반영하듯 거버넌스는 계층제 조정양식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1기 이후 거버넌스의 주요 행위자들은 다변화하였다. 특히 2기에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가 적극 참여하면서 시민사회(네트워크) 영역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개발과 생태 가치의 충돌이 대결과 투쟁으로만 소비되고 새만금 사업이 내부계획을 변경하고 재추진하면서 네트워크 거버넌스는 급속하게 축소되었다. 대신에 시장 거버넌스는 확대되고 계층제 거버넌스는 강화되었다. 새만금 사업의 거버넌스 변화 과정을 도식화하면 <그림 2>와 같다.
2기 가치 충돌기에 진행되었던 종교계와 시민단체, 지역주민들의 문제제기는 개발과 성장만을 추구하던 기존의 사회체계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들의 요구와 실천은 궁극적으로 생명과 평화를 사회의 주요 가치로 설정하고 생명평화의 가치로 사회체계와 문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거버넌스 참여는 사회적 조정양식으로서 수평적 관계에서의 소통과 숙의, 합의 등을 요구하였다.
계층제 거버넌스가 과도하게 작동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이들의 요구가 제대로 수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업이 중단 및 재검토되었고, 생태적 가치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었고, 이후 사회적으로 확산하였다는 점에서 <그림 2>와 같이 2기에서 네트워크 거버넌스 영역이 조금 확대된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새만금 사업 반대측이 제기한 법적 소송이 마무리되고 정부에 의해 사업이 강행되면서 계층제는 강화되고 네트워크는 축소되었다. 특히 사업계획을 변경하던 3기에는 정부의 여러 부처와 여야 정치권이 법 개정을 위해 주요 행위자로 참여하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 4기 내부계획 추진기에는 사업 추진을 위해 시장(기업)이 주요 행위자로 참여하면서 시장 거버넌스의 방향으로 이동하는 경향도 발견된다.
대형국책사업이면서 동시에 사업 진행과정에서 갯벌과 지역사회 파괴라는 사회문제를 발생시키는 새만금 사업은 하나의 조정양식만으로 다룰 수 없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럼에도 새만금 사업은 정부 중심의 계층적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운영하였다. 네트워크 거버넌스와 시장 거버넌스는 미약한 형태로만 작동하였다. 하지만 2기에 생태 및 환경단체와 종교단체, 지역주민들이 생태 가치를 주장하며 새만금 거버넌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러한 경직성이 조금은 해소되었다. 이들의 요구가 거버넌스 내에 적극적으로 수용되면서 네트워크 중심의 협력적 거버넌스로 수정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 이러한 기회를 인식하지 못했다. 소통과 숙의, 합의형성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는 것만을 목표로 거버넌스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계층제 거버넌스로의 회귀이다. 그리고 새만금 갯벌과 지역사회는 파괴되었고 생태적 전환은 좌절되었다.
3.
새만금 생태 거버넌스에서 지역주민의 주변화와 지역공동체 해체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지역주민들이 행위자로 1기부터 참여하고 있지만, 거버넌스에서 주변화고 파편화되어 있어서 영향력 있는 구체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변화는 사업 초기부터 진행되었다. 1기 사업 결정기 초기에 진행된 환경영향평가에서 새만금 사업이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에 미치는 영향은 검토되지 않았다. 1987년부터 1989년 사이에 진행된 환경영향평가에서 이 문제는 형식적으로만 다루어졌고, 반대운동측의 문제제기로 다시 시행된 민관 공동조사에서는 조사대상에서 제외되었다(박재묵, 2002: 206). 또한,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면허권과 배, 토지 등과 같은 소유권과 물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보상의 결과는 지역주민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이어졌다. 더욱이 방조제 물막이 공사 이후 갯벌 생태계가 변화하고 어장이 황폐화되면서 주민들간의 경쟁과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지역공동체의 분열을 가속화하였다(함한희, 2001: 139-40; 2004; 박재묵, 2003: 218). 시민단체들도 생태계보존이라는 이슈에만 집중하여 지역주민들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사업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만을 대상으로 진행되었고, 이들이 급격하게 반대운동에서 떠나자 시민단체들과 지역공동체와의 연관성은 악화하였다.
이처럼, 지역주민들의 주변화와 파편화에 대한 책임이 정부 및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시민단체들에게도 일정 부분 있다는 점에서 새만금 거버넌스의 원활한 운영을 기대하는 것은 초기부터 무리였다. 지역주민들과 지역공동체가 초기부터 분열되고 붕괴되면서 거버넌스에서 주요 행위자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또한, 새만금 사업의 필요성을 지역개발론과 지역홀대론에 기대어 설명한 담론구조에서 개발사업 반대는 전북사회의 담론장에서 이기주의로 매도되어, 지역의 어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제대로 피력하지 못했다. 경제성이 없었던 새만금 사업이 정치권에서 무리하게 추진한 이유와 추진과정에서 제기된 생태계 파괴와 지역공동체 붕괴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이 사업이 지속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전북도민들의 기대였다. 개발에 대한 도민들의 기대는 지역정치인과 언론, 지식인들이 주도한 지역개발론이라는 희망담론과 지역홀대론이라는 분노담론을 통해 추동되었고 결집하였다.
도민들의 억울함과 성장에 대한 열망의 원인인 ‘지역불균형’은 실재하였다. 간척사업이 지역경제에 기여하고 자신의 삶도 좀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대다수 도민의 기대는 일견 당연하고 소박한 현실적 욕구였다. 이러한 현실적 요구에 기초했다는 점이 새만금 사업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새만금 사업 기공식의 대통령 연설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세기와 새로운 세기를 잇는 이 역사는 국토와 산업의 균형있는 반전을 이룩하려는 시대정신의 표상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하늘의 힘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넓은 국토를 만들려 합니다. 그 새로운 국토 위에 산업화와 농수산업의 발전, 도시와 농어촌이 조화를 이루는 살기 좋은 고장을 건설할 것입니다. ⋯중략⋯ 지금 서해안 곳곳에는 우렁찬 개발의 고동이 쉼 없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북쪽의 시화지구로부터 대산, 군장산업기지와 저 남쪽의 대불, 하남공단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조성되고 있는 대규모 공업단지로부터 우리는 활력이 넘친 서해안의 내일을 봅니다. (중략) 오늘의 이 대역사를 계기로 이 고장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서해안 시대와 함께 웅비할 것입니다. 만경, 김제의 넓은 벌이 우리나라의 곡창으로 겨레의 삶을 보장해 온 터전이었듯이 새만금의 광활한 간척지는 21세기 번영을 기약하는 땅이 될 것입니다(김성수, 2021).
새만금 사업은 지역개발사업인 동시에 지역균형발전으로 호명되고, 이는 시대정신으로 그 정당성이 부여되었다. 이처럼 새만금 사업은 도민들의 경제성장이라는 현실적 욕구와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규범적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켜 주었다.
성장과 발전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는 전북의 담론장에서 공사 현장의 지역주민들은 주변화되었다. 공사 이전에 이루어진 차별적이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보상으로 인해 지역공동체가 분열되어서 공사가 시작된 이후 적극적인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방조제 내해(內海)에서의 어업은 당국의 묵인하에서 가능한 불업어업이었고, 갯벌 생태계 파괴로 인한 어족자원 감소로 인해 어민들간의 경쟁을 치열해졌다. 생계가 막막해진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타지로 이사하거나 이직하였다. 지역주민들의 욕구와 참여는 1기 사업 결정기와 2기 가치 충돌기에만 논의되었고, 3기부터는 핵심에서 벗어나 주변화되었다.
Ⅳ.
새만금 생태 거버넌스에서 불교의 역할과 매향제
2기 가치 충돌기에 정부와 시장이 독점했던 사회의 가치와 패러다임에 시민사회가 새로운 가치와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환경을 의제로 하는 시민운동은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운동초기에는 주로 공해와 오염이 주된 이슈였지만 점차 생태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었다. 그런 와중에 시화호 사건과 동강댐 저지 운동을 통해 역량을 키웠던 환경운동단체들은 90년대 후반부터 새만금 반대운동을 본격화하였다. 반대운동에 종교계도 깊게 참여하면서 생태적 가치는 심화되었다. 운동의 내용은 반대와 저항에서 공존과 상생으로 변화하였고, 다양한 종교의례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8)
삼보, 즉 세 걸음은 탐진치의 독을 극복하자는 상징 행위이며, 이어 이 속진의 도회지, 한복판을 가로질러 엎드려 올리는 한 차례의 절은 생명 경시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 없다 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참회를 엄숙하게 촉구하고 또한, 그 참회의 몸짓을 스스로 국민 여러분과 함께 체현하기 위해서입니다(풀꽃평화연구소, 2006: 277).
새만금 사업을 알리기 위해 2001년 5월에 실시된 삼보일배에 앞서 발표된 참회기도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여러 생태의례 중에서도 언론과 학계에서 주목한 것은 삼보일배였다. 특히 2003년 3월 28일부터 5월 말까지 65일 동안 전북 부안군 해창갯벌에서 서울까지 이어진 삼보일배를 계기로 한국사회는 생태적 관점에서 이 사안을 이해하였고, 반대운동은 전국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삼보일배는 불교의 수행법을 차용한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퍼포먼스에 생태적 가치를 담아서 참여자들의 내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삼보일배는 이후 대표적인 무저항무폭력 시위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삼보일배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고,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왔다. 일반적으로 서울로 향하는 순례단만 조명받고 있지만, 전북순례단도 있었다. 갯벌과 생명파괴의 현장인 전북지역의 도민에게 새만금 개발사업의 무모함과 순례단의 절실함을 알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서, 해창갯벌에서 함께 출발한 순례단 중 일부는 군산 금강 하구둑에서 군산-익산-전주를 돌아 전북도청을 목표로 하는 전북순례를 하였다(<오마이뉴스> 2003.4.12.). 하지만 삼보일배는 일회성 행사로 마무리되고 지역순례보다는 서울을 향한 순례에 관심이 집중되는 한계를 보이며 지역사회에서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에 이 연구는 삼보일보가 아닌 매향제에 주목한다. ‘새만금 매향제’는 해창갯벌에서 2000년 1월 30일에 “간척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새만금 갯벌의 영원한 존재의 필요성과 파괴된 갯벌의 부활을 염원하는 행사”로 새만금 전시관 인근과 해창갯벌에서 어민들과 지역주민, 전북도민,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새만금 갯벌의 회생을 기원하는 사람들 500여 명이 모여 진행하였다(녹색연합, 2000). 매향제는 언론기사에 의하면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 임원들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불교신자였던 이들은 지역의 미륵신앙에 기초한 ‘매향’을 지역주민들과의 결합을 위한 활동 방안으로 끄집어냈었고, 지역의 향토사학자의 도움으로 이론적, 철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매향제를 준비하였다(<부안독립신문> 2019.12.13.). 매향제 이후에는 매향비도 남겼다. 매향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매향의식의 역할을 고려하면 ‘새만금 매향제’는 새만금 사업의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아픔을 감싸안고 나아가 전북도민의 한과 응어리를 정화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이는 전북지역이 백제 때부터 미륵불과 용화회상을 고대하고 신앙하던 지역이었고, 금산사를 비롯하여 아직도 미륵사찰이 있다는 점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새만금 매향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잊혔다. 이러한 이유는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매향이 묻힌 곳 인근에 있는 장승터처럼 매향을 관리할 주체가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았고, 지역주민들과의 연결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9)
정부 당국은 2023년 잼버리 준비 공사 지역에 해창갯벌에 세워졌던 장승터를 포함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환경단체들과 지역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여 새만금 잼버리 남쪽 진입로가 장승터 옆으로 변경되어 장승들은 지금의 자리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장승터 사정이 알려져 2023년 8월에 장승터를 단장하는 장승문화제가 열렸다. 그리고 이때 쓰려져 있던 매향비를 다시 세웠다.10) 하지만 침향이 되기를 기다리며 나무를 묻었던 ‘해창다리에서 서북쪽 300걸음 갯벌’은 새만금 잼버리를 위해 이미 매립되어, 천년이 지나도 물에 떠 오를 일이 없게 되었다.
Ⅴ.
매향과 지역공동체: 매향의식의 종교적⋅사회적 역할
1.
매향제와 마을공동체의 결속
새만금 매향제는 침향(沈香)을 만들기 위해 향나무 등을 갯벌에 묻어두는 행위를 생태의례로 재해석한 사례이다. 이러한 변용이 가능한 이유는 매향(埋香)이라는 행위에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었고, 실제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갯벌에 묻었던 향나무는 천년이 흐른 뒤에 침향이 되어 물에 떠 오르고 강철처럼 단단해서 두드리면 쇳소리가 나고, 태워도 그을음이 없고 향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매향은 미륵불의 용화회(龍華會)에 공양할 향과 약재를 마련하려는 신앙 활동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의미를 담아 매향은 민중들이 미륵 세상의 도래를 기원하며 행하는 종교의식으로 시행되었고, 매향을 한 이후에는 그 사실을 비의 형태나 암각의 형태로 남겼다. 매향 유적은 현재까지 확인된 사례는 전국 20개로 조사된다(채웅석, 2002: 231; 문재규, 2019: 75-20). 시기적으로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집중되어 있으며 경남 사천시와 강원도 고성군, 전남 신안군 등 주로 해안지역에 집중되어 있다(최연주, 2021: 220-221).
매향비는 위치한 지리적 환경 때문에 판독이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매향비의 내용을 분석한 다수의 연구는 매향의식에는 종교적 의미와 함께 집단적 활동을 통해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채웅석, 2002: 2006).
매향비가 집중적으로 건립된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 연해지역은 개간과 인구유입, 농장의 확대, 외적의 침입 등으로 촌락의 결속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시기였다. 고려 후기 이후 현재 토지의 개간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고 해당 토지는 상대적으로 대단히 비옥하였다. 이렇게 비옥한 토지들은 왜구의 피해를 입으면 버려지고 황폐해졌다. 정세가 안정되면 주민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오거나 새로운 인구가 유입하여 정착하였다. 연해지역은 사적인 어업과 제염업 등도 발달할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서 이익을 바라고 유입되는 인구가 많았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구의 유동이 심했고, 향촌공동체 구성원의 변화도 많았다. 더욱이 농업과 어업의 생산력 발전에 따라 부를 축적한 사람들도 있어서 빈부의 격차도 증가하였고, 그에 따라 도적도 증가하여 공동체의 질서를 위협하는 사회문제가 증가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매향은 향촌공동체를 유지하고 재건하는 구심점으로서 시도되었다(채웅석, 2002: 99-103). 이러한 흐름에서 정경일과 채웅석은 매향이 재난과 전쟁 등으로 인한 위기에 직면했거나 피해복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단계에서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이루어졌을 것이라 예상하였다(정경일, 1993: 33-43; 채웅석, 2002: 103).
매향은 개인적 단위가 아닌 집단적 수준에서 진행되었고 이를 위한 향도(香徒)가 조직되었다. 또한 매향은 일회적 행사로 마무리되지 않고 유지 관리를 위한 활동이 이어졌다. 매향하기 전 두 해 동안 수륙무차대회를 열어서 민심을 다독인 사례, 매향 이후 사후 관리를 위한 미륵전장등보(彌勒前長燈寶)를 설치하고 관리자를 임명한 사례도 있다. 이외에도 매향장소를 보호하고 참여자들의 결속을 유지할 수 있는 활동을 이어졌고 이러한 활동들에는 종교적 의미도 담겨 있었다(채웅석, 2006: 244). 이처럼 매향은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복원하는 종교의식으로 기능하였다. 다만 여말선초라는 시대적 조건에서 종교의식의 토대는 불교에서 불교와 민중신앙의 습합으로 변화하였고 주도세력도 사찰과 승려 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변화하였다. 즉 고려후기에 매향의식은 사찰과 승려 주도로 이루어지면서 법회에 준하는 불교 의례로서 시행되었고(문재규, 2019: 63), 조선전기에는 민간 주도의 종교의례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참여자들은 더욱 증가하였고 삶과의 관련성은 더욱 커졌다.
2.
매향제의 생태의례로서의 변용 사례
새만금 매향제 외에도 매향제를 현대에 지역사회와 환경 보전을 위한 중요한 문화적 실천으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전라남도 무안갯벌에서 세계습지의 날을 기념하여 열린 매향제와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매향제이다.
우선, 2012년 5월, 전라남도 무안갯벌에서 세계습지의 날을 기념하여 매향제가 개최되었다. 관련 기사에서는 이날의 매향제가 전통적인 매향의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복원한 네 번째 사례로, 갯벌의 생명력과 보전 가치를 상징하는 데 큰 의미를 지녔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이투데이> 2012.5.25.). 무안갯벌은 2001년 우리나라 최초로 갯벌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에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어 그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열린 매향제는 지역사회와 방문객들에게 갯벌의 생태적 중요성을 알리고, 환경 보전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사천시 흥사리 매향제는 고려 말기인 1387년에 건립된 흥사리 매향비(보물 제614호)를 중심으로 202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의식으로 매향비와 근처 다솔사를 순례한다. 흥사리 매향제는 특히 지역공체와 함께 갯벌에다 향을 묻은 뒤 제를 지내고 국태민안과 미륵보살의 재림을 염원했다는 비문의 내용을 현대에 재현하고, 이를 지역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기회로 활용한다. 헌화, 축원, 매향무, 매향의식 재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포함된 매향제는 지역민들 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전통적 가치의 재발견을 가능하게 한다(<경남신문> 2021.11.02.; <뉴스N> 2024.10.7.) 흥사리 매향제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지역사회 내 상호작용과 연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현대의 매향제는 생태계와의 조화를 상징하는 생태의식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거 매향의식에서 갯벌에 향을 묻는 행위를 자연과의 교감으로 이해하고, 흥사리 매향제에서는 이를 재현하고 생태보전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처럼 매향제는 지역공동체와 문화유산, 지역생태계의 연결성을 강조하며, 생태적 감수성을 높이는 효과를 지닌다.
흥사리 매향제는 지역사회와 생태⋅환경 보전을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의 사례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매향제를 통해 전통적 종교의식이 현대적 생태 문제와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지역공동체와 환경 보전의 연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종교의례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Ⅵ.
결론: 생태 거버넌스에서 종교의 잠재적 역할
협력적 거버넌스에서는 거버넌스의 조정자 역할이 요구된다. 여말선초의 매향의식을 통해 우리는 공동체의 결속과 복원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확인하였다.
현대사회에서 종교는 시민사회의 한 구성요소로 위치하지만, 그 역할은 시민사회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영역들이 기능에 의해 분화되고 각각의 영역이 전문화되고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사회의 위기 국면에서 다시 소환된다. 그리고 이때의 역할은 정부-시민사회-시장의 관계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역할이다.
오늘날처럼 엄중한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종교는 도덕적 권위와 공동체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고 협력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은 단순히 종교적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까지 확장된다. 특히, 사회적 불안정성과 생태적 위기가 공존하는 현시대에는 종교가 제공할 수 있는 도덕적 지침과 공동체 결속의 힘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예를 들어, 종교는 지역사회의 신뢰 회복과 협력적 거버넌스를 위한 조정자(또는 촉진자)로서 기능할 수 있다. 이는 종교의례나 상징을 활용하여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적 변화를 위한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또한, 종교는 갈등이 첨예한 시기에 중립적이며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 조정자로서 각 주체가 서로 이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은 단순한 신앙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통합과 생태적 전환을 위한 실질적인 기여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종교는 공공정책을 지원하거나 생태환경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동기를 제공하며, 이러한 역할은 특히 생태 거버넌스에서 효과적이다.
따라서 종교는 단순히 도덕적 권위를 유지하는 전통적 역할을 넘어, 오늘날 신뢰를 회복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필수적인 사회적 자산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한 갈등의 현장에서 종교가 사회적 조정자이자 변혁의 촉진자로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매향의식을 활용한 매향제는 거버넌스에서 소외되었던 지역민들을 참여시키고 이를 통해 종교가 조정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중요한 종교의례였다. 새만금 사업의 진행 과정에서 2기 가치 충돌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생명평화의 가치가 사회적 이슈가 부각되었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결과에 따라 한국사회가 추구하는 핵심가치는 생태적 가치로 전환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성장과 개발 가치를 따르는 정부와 시장에서 이에 저항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준이었다. 한데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는 이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였다. 잠재력을 확인하는 역량도 부족하였다. 정부를 상대로 하는 투쟁에 집중하였고,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하는 법적 소송에 기대었다. 이보다는 지역사회에 좀 더 내려가서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아픔과 한, 응어리를 이해해야 했다. 불교계를 포함한 종교계는 ‘거버넌스 조정자’라는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 새만금 반대운동 당시 생명평화와 공동체의 안녕이라는 가치를 명확히 제시하고, 매향제를 통해 지역사회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아쉽게도 불교계는 매향제에 주목하지 못했고 참여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매향은 지역의 환경단체들에게 발견되었다. 종교가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매향제는 매향의 깊은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고, 매향제를 일회성 행사로 끝맺음으로써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불교계는 향후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종교계가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생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필요가 있다.
이명호
는 사회학(한양대)과 사회복지학(동신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양대와 동국대, 중앙승가대에서 강의하였고, 경희대 종교시민문화연구소에서 학술연구교수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산하 인드라망연구소에서 생태문명(생명평화)과 문명전환, 생태마을, 마을공동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종교 거버넌스와 종교영성』(2024, 공저), 『문명전환과 불교의 응답』(2022), 『노년의 편안한 임종을 관찰하다』(2021), 『현대사회의 위기와 동양사회사상』, (2014, 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Assessing the Efficacy of Medical and Cultural Support for Immigrant Adaptation and Social Integration(2024, 공저), 기후정치의 실패와 생태시민성: 토마스 베리의 인간 재창조를 중심으로(2024), 복합위기 시기, 불교의 사유에 근거한 생태적 돌봄 전망하기(2023),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종교 기반 협력적 거버넌스에 관한 탐색적 연구(2022), 코로나19 이전/이후, 사회의 재구조화 가능성(2021), 공감의 구조변동, 관계지향적 삶의 실천으로(2017) 등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